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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완득이 개요

2. 완득이 줄거리

3. 완득이 감상평

 

 

1. <완득이>의 개요

남들보다 키가 작지만 누구보다 큰 아버지, 그리고 얼마 전부터 한 가족이 된 삼촌과 함께 사는 고등학생 완득이. 가난하고 박탈된 가정환경에서 공부를 할 수 없는 것이 문제지만, 그는 누구에게도 전혀 당하지 않는다. 소유도 꿈도 희망도 없던 완득이 간절히 원했던 단 한 가지, 그래서 담임선생님 '똥주'는 사라지고 말았던 것이다! 사사건건 일에 참견하는 것은 물론, 바로 옆 옥탑방에서 살며 밤낮으로 자신을 부른다.

 

오늘도 완득이는 교회를 찾아가 간절히 기도한다. "똥주를 죽여주세요." 그가 내 이름을 부르자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 진정한 자율에 독학을 맡기는 독특한 교육장 동주를 학생들에게는 '똥주'라고 부른다. 완득에게 무한한 관심을 가진 동주는 학교에서 숨기고 싶은 가정사와 사생활을 폭로해 완득을 당황하게 하고, 집에 오면 학교에서 받은 즉석밥까지 훔치는 행동으로 완득을 괴롭힌다. 밤에 침입해 아버지, 삼촌과 술 한 잔 하는 일이 흔치 않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완득이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자신의 존재조차 몰랐던 진짜 엄마를 만나기 위해 동주의 오지랖이 넓어 집에서 도망칠 계획을 세우지만, 완득이에 대한 동주의 관심은 식지 않는다…! 세상을 '완전히' 틀어놓은 오지 선생님 '똥주'가 유쾌하고 특별한 멘토링을 시작한다!

 

 

2. 완득이 줄거리

완득의 아버지는 꼽추라 불리는 척추장애를 가진 인물로 동네의 허름한 카바레에서 탭댄스를 추며 생계를 이어가던 완득부는 카바레가 클럽으로 바뀐다는 소식에 이내 자취를 감춘다. 하지만 춤으로 아들 완득을 열심히 추던 아버지의 마음에는 점차 고뇌의 흔적이 가득하고, 완득의 삼촌이라 불리는 지적장애인 민구마저 실직과 동시에 큰 고난을 겪게 된다.

 

완득은 고등학교 2학년이지만 별다른 소득 없이 학교생활을 즐기지 못하고 있지만 완득의 동네 주민이자 담임선생님인 동주(김윤석 분)는 늘 완득에게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어 그가 남아있는 것이 다행으로 보이지만, 완득의 입장에서는 동주의 관심이 불편의 근원이며, 틈만 나면 동주를 죽게 해달라는 시시한 기도를 계속한다.

 

사실 동주는 외국인 어머니와 장애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편견의 대상이었던 완득을 불쌍히 여기며, 이에 자신은 시치미를 떼고 완득을 돌보기에 여념이 없다. 완득의 어머니는 과거 완득이 어머니의 젖을 떼자 곧바로 집을 나간 것으로 밝혀져 돌아오지 않았다. 동주는 자신이 전도사로 있는 교회 내 외국인 공동체를 통해 이 모든 것을 알게 되고, 완득은 동주 어머니의 정체성 시작부터 혼란스러워한다.

 

장애를 가진 아버지의 존재만으로 어머니의 자존감 하락을 경험한 후 어머니마저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감당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동주는 완득의 어머니에게 사는 곳을 밝히고, 수십 년이 지난 어느 날 갑자기 재회한다. ​ 영화 '완득이'를 관통하는 이야기의 핵심은 사회의 중심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위한 것으로, 한국 사회의 구석에 집중된 특징적인 계층, 장애인, 상대적으로 경제적 능력이 좁은 다른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을 나열한 것입니다

 

완득이는 일련의 이슈의 중심에 있을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학교를 비롯한 사회에서 자신의 움직임을 그대로 유지하지 못하는 태도를 보입니다. 식탁에서 가장 먼 책상에 홀로 앉아 칠판보다 창밖을 내다보는 그. 학교에서 저소득층 가정의 인스턴트 식품을 받는 것 역시 자신을 비웃을 친구들을 생각하며 가져갈 생각은 하지 않지만, 이 완전한 습득의 감정을 고친 사람은 다름 아닌 동주 담임선생님입니다. 동주는 가난이 수치스럽다고 생각하는 순간 앞으로 더 창피해질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3. 완득이 감상평

완득은 선천적으로 불같은 기질을 지니고 태어나 신체적으로 폭력적인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아버지가 시장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학대를 당하고 있거나, 마을의 나쁜 남자가 아버지를 비하할 때 완득의 주먹은 항상 상대의 얼굴을 엉망으로 만든다. 완득이의 성향을 지적하거나 꾸짖을 때마다 완득은 몸이 약한 아버지의 체벌이나 욕설에 대항할 기세를 보이지 않는다. 한 번은 마을에 사는 인도인 핫산의 권유로 킥복싱 체육관을 찾은 완득이 원장의 지도 아래 스파링 오디션을 거치게 된다.

 

초보인 완득이 선수와의 대결에서 이길 가능성은 낮지만, 완득이는 스포츠 규칙에 어긋나는 태도로 선수를 슬프게 하기 시작했고, 이를 본 원장은 완득이의 태도에 실망하며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완득이의 첫 기쁨이나 가슴 뛰는 감정은 킥복싱 대결에 휩싸인다. 다시 체육관을 찾은 완득은 원장에게 사과의 뜻을 밝히며 줄넘기를 비롯한 기초 체력 훈련을 꾸준히 배우겠다고 다짐한다.

 

어느 선수든 실력을 키우기 시작하면 원장은 완득에게 다른 체육관의 선수와 스파링 대결을 제안하고, 완득은 원장의 제안을 단번에 받아들인다. 스파링 당일 수세에 몰린 완득은 유효한 공격을 일절 하지 못하고 완패의 쓴맛을 보고 링 바닥에 내동댕이쳐진다. 하지만 완득의 얼굴에서 미묘한 미소가 새어 나오기 시작하고, 원장은 완득의 웃음 속에 내재된 의미를 파악한 듯 심혈을 기울인다. ​

 

완득이 저지른 폭력에는 세상에 대한 항거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아버지가 일으킨 부당한 행위에 대한 반항이자 아버지의 장애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태도에 대한 직접적인 저항이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이성을 악한 다리로 해결할 수는 없으며, 그 결과로 다가올 피해의 정도가 완득이 처한 위기로 수렴될 것은 당연하다. 동주는 결국 완득이 이 이성을 깨닫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킥복싱이라는 스포츠를 경험하기를 원했고, 킥복싱을 가르치는 연출가의 입장에서 완득은 베이스로만 작동하지 않는 세상을 배웠고, 완득이 하나의 궤적을 넘어서게 만들었다.

 

<완득>은 완득이라는 인물의 주변 인물들을 통해 따뜻한 정서적 이완을 형성했지만, 완득의 소재에는 주변 상황에 대한 일부 비관적 시선을 숨기지 않거나 언제라도 대항하려는 의지가 포함되어 있었다. 궁극적으로 완득이 처한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와 변화의 지점은 자연스럽게 주제의 관점과 일치한다. 완득이는 엄마의 낡은 신발이 걱정되다가 근처 신발 가게가 눈에 띄자 서둘러 엄마를 가게 안으로 밀어넣는다. 그리고 가장 잘 어울리는 신발 하나를 집어 들고 엄마의 발에 살며시 끼워준다.

 

딱 어울리는 신발을 본 엄마는 아들 없이 신발값을 지불한다는 사실에 부담스러워하지만 완득이의 강경한 태도에 못 이기는 척 가게를 나서고, 완득이는 주저하지 않고 자신을 엄마라고 소개한다. 버스터미널에 앉아 있는 모자 두 개... 엄마는 신발 닦기에 여념이 없고 완득이는 존댓말로 대하는 엄마에게 다음에 한 번 치료해달라고 부탁한다.

 

엄마는 조심스럽게 완득이에게 한 번 안아주면 안 되겠냐고 묻고, 완득이는 가녀린 엄마의 팔을 잡고 꽉 잡는다. 잠시 후 완득이 아빠는 완득이가 함께 일하는 식당을 찾아 살자고 제안하고, 둘은 다시 매개체로 가정을 꾸리기 시작한다. 한편, 동주는 자신이 전도사로 있던 교회를 매입하기에 이르며 마을의 문화 중심지로 존재를 바꾼다. 내용은 완득이와 민구가 댄스 강연을 할 예정인데, 주변 다문화인들이 즐기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해본다.

 

완득이는 교회 안 깔끔하고 명랑한 전경에 자연스럽게 새어나오며 늘 동경의 대상이었던 엄마를 포함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아빠의 모습에 흐뭇해한다. ​ 부족하고 열등감에 둘러싸인 완득이라는 인물의 결점은 모두 무의미한 점이다. 완득부의 장애는 아버지를 직접 묘사할 수 있는 단서가 아니며, 어머니의 국적은 대체로 그녀의 전사일 뿐이다. 완득은 동급 최고의 인기 선수인 윤하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강인해 보이는 감독에게 선수로 인정받기까지 했다.

 

무엇보다 동주는 훌륭한 스승의 보호를 받으며 항상 완득의 편에 설 것이라는 믿음이 간다. 작품은 차분한 시선으로 세상의 편견의 지점에 대한 성찰을 유도하지 않으며, 자신이 겪는 고통을 느끼면서 그 고통을 전하고자 하는 의도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물론 원작의 톤을 유지하는 것이 영화화 과정에서 중요한 부분이었을 것이지만, 예를 들어 외국인 노동자와 이주민을 향한 공격적인 시각 등 위험한 지점을 강조하거나 부각시키지는 않았다. 영화라는 매개체는 직관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 이는 관객들과 함께 고민의 지점을 만들어 인물들을 긴장하게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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